주식회사 다마스의 창업자인 다마스 히코스케는 100여년 전인 1920년 8월 20일, 일본 야나이에서 다마스가(家)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히코스케는 당시 경쟁자가 거의 없는 스포츠였던 탁구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실력을 갈고 닦으며 전일본 탁구 선수권 대회 전 종목에서 표창대에 올랐습니다. (남자 단식 2위, 남자 복식 2위, 혼합 복식 우승)

탁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때로는 주변을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1941년, 메이지진구 체육대회(현재의 국민체육대회)에서 탁구가 '연약한 스포츠'라는 이유로 제외되자 분개한 히코스케는 당시 후생성과 일본탁구협회에 강력한 항의문을 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탁구의 명예를 걸고' 출전하여 '우승 아니면 죽음'이라는 각오로 완주해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튿날 아침신문에는 '탁구의 다마스가 이겼다'라는 제목이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선수 시절, 러버를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은 경험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고성능 러버를 일본에서 만들고자 결심하였으며, 1950년, 탁구 용품을 취급하는 주식회사 다마스를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탁구라는 작은 우물을 깊이 계속 판다'를 모토로, 고성능·고품질의 라켓과 러버를 자체 생산하는 데 힘써 왔습니다.

1957년에는 '지도자가 없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위한 좋은 지침서를 만들고 싶다'는 오랜 열정을 바탕으로 「탁구 리포트」를 창간하였습니다. 이 책자는 전국의 탁구 팬들에게 기술 지침서로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였으며, 일본의 경기 수준 향상에도 기여해 왔습니다.

또한, 1983년에는 용품 판매로 얻은 이익을 탁구계에 환원하고자 하는 뜻에서 젊은 탁구인들의 훈련 장소로 「버터플라이 탁구도장」을 건립하였습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의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이곳을 찾아 국제 교류의 장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순한 용품 제조사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에너지가 넘치는 활동은 많은 탁구인들을 매료시켰으며, 2004년7월, 자신이 일으킨 버터플라이 브랜드의 성장과 평생의 염원이었던 탁구의 보급과 진흥을 지켜본 뒤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히코스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수를 꽃에 비유한다면, 우리들은 그 꽃을 섬기는 나비이고 싶다"

버터플라이 브랜드에 담긴 히코스케의 뜻은, 타계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후배들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